“중학교 때 그런 적이 있었어요. 하루는 제가 갑자기 몸이 아파서 학교에 결석했는데 다른 반 친구가 저희 반으로 저를 찾아왔어요. 근데 제가 안 보이까 ‘야, OO이 어디 갔어? 좀 불러줘.’ 라고 했는데 저희 반 애들은 그제야 제가 반에 없는 걸 알았던 거예요. 더 웃긴 건 저희 반 애가 저를 열심히 찾다가 ‘이상하네. 걔 아까 봤는데...’ 라고 했다는 거예요. 내 존재감이 그 정도라고 한참 놀림 받았어요.
지금도 어디 모임을 가면 딱히 말을 많이 하지 않아서 저는 있으나 마나 한 멤버이긴 해요. 근데 그렇다고 해서 막 텐션을 올리고 분위기를 이끄는 역할을 한다? 어우, 그것도 힘든 일이에요. 사람들이 날 재밌어하고 중요한 존재로 생각해주면 좋겠지만, 내가 뭔가를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건 망설여져요. 스스로 어색한 느낌이에요.”
_인기인이 되는 그날을 꿈꾸는 선천적 내향인 OO씨
어떨 때는 리드 받고 싶고, 어떨 때는 리드 하고 싶고
내향적인 사람들은 흔히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을 피곤하게 여기고, 소수의 인간관계를 선호한다고 여겨진다. 대화할 때도 먼저 시작하는 편이 아니다. 그런데 어떤 모임 혹은 관계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대화를 리드하거나 관계를 적극적으로 이끌어 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억지로 노력한 것일까?
어쩔 수 없이 관계를 이끌었던 것뿐이다?
유명한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은 무의식을 그림자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우리가 태양 아래에 서면 어김없이 우리의 형체를 따라 생기는 것이 그림자다. 그리고 어딜 가든 우리를 따라다닌다. 무의식은 바로 그런 존재다. 내성적인 사람도 친밀한 관계와 애정을 원한다. 타인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사람이 시선을 끌고 인기가 많은 것처럼 보이다 보니, 내향인도 본인의 존재감을 아낌없이 펼치는 그런 외향적 모습들을 한편으로 부러워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도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그 마음이 그림자처럼 무의식에 슬그머니 쌓인다. 다만 나의 내향적인 성향이 더 강해서 부럽고 닮고 싶은 욕구가 쌓이는 것을 보지 못할 뿐이다. 마치 내 그림자가 계속 나를 따라다니고 있다는 걸 잊은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내향인들이 어쩌다 분위기를 이끌게 되는 상황에 놓이면, 급격한 에너지 소비를 느낀다. 주목받는 게 부담스럽고 다른 사람의 반응에 예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은 역시 그런 역할은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림자가 어느 정도 ‘나’라고 할 수 있듯이 사람을 리드하는 본인 역시 자신의 일부이다. 평소에 늘 듣기만 하고 따라가던 사람이 어느 자리에선 갑자기 말수가 늘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억지로 하게 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조금씩 적응하다 보면 능숙하게 즐길 수도 있다. 결국 모두 충족돼야 하는 내면의 욕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향인이 너무 소진되지 않고
적절히 즐길 수 있도록 리드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내향인의 강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유재석
우리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내향인 예시가 바로 유재석이다. 방송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과 이야기하고 프로그램을 이끄는 국민MC 유재석도 실은 자타공인 내향인이다.
유재석의 MBTI는 ISFP로 알려져 있다. “E들은 에너지가 넘쳐서 너무 피곤해”라던가 “여행 가면 호텔에서 쉬어야지. 굳이 왜 나가야 하나”라고 말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내향인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어떻게 국민MC가 될 수 있었을까?
비결은 그가 내향인의 강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바로 에너지를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이런 특징을 활용하지 않을 때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쉬지만, 제대로 활용하게 되면 자신만의 매력이나 특기를 발전시킬 수 있다. 유재석은 자신의 방송부터 다른 사람의 방송까지도 꼼꼼히 모니터링 하기로 유명하다. 방송에서 활발한 모습과는 다르게, 일을 하지 않을 때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데 그 시간에 방송일과 관련한 많은 지식을 쌓으려고 하며, 모니터링도 역시 꼼꼼히 한다. 그래서 유재석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많은 사람들의 크고 작은 사전정보를 정확하게 짚으며 배려해주고 에피소드를 이끌어서 흐름을 이끄는 것이다.
리드하더라도 나의 행복과 연관을 짓자
나는 원래 내향적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심리학과 인지행동에 관해 공부하면서 글을 쓰고 강의하고 상담도 하다 보니 어느새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 사람 앞에 나서는 일이 많다 보니 사람들은 나를 내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설명하고 리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향적인 삶도 살게 된 것이다. (직접 등판한 마음세탁소 카운슬러 OO씨)
나는 내향적인 사람들에게 타인과의 관계에서 모든 것을 리드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그저 어떤 한 분야에 대해 지식을 쌓고, 그것을 내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리드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에 도달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자연스레 주도하는 사람이 되고, 내 안의 인정 욕구, 주요 인물이 되고 싶은 욕구를 적당히 충족하면서 본인도 지치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나에게 도움을 받았던 S씨는 요리에 푹 빠졌다. 단순히 요리책을 보고 따라 하는 수준이 아니라, 여러 가지의 레시피를 사용해 비교하고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드는 정도까지 됐다. 그렇게 좋아서 했을 뿐인데 요리 ‘잘하는’ 사람으로 주변에 알려지자 하나둘 요리에 관해 물어오는 사람들이 생겼다. 직접 가르쳐 주기도 했다. 당연히, 본인이 전문가인 영역이니 분위기를 리드해서 사람들을 이끌게 되었고, 그렇게 내성적이지만 적당히 외향적인 또 다른 자기 모습을 즐기게 되었다. 좋아하고 잘하는 분야이니 모임을 이끄는 게 두렵거나 지치지 않고, 그러면서 사람들의 중심에서 효능감도 느끼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