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온 친구가 있습니다. 그애랑 당시 취미나 취향이 비슷해서 마음이 잘 맞았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저희는 조금씩 다른 삶을 살게 됐고 가치관도 달라지게 됐어요. 저는 30대 중반이지만 아직 재테크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친구는 이곳 저곳 투자를 많이 하더라고요. 저도 살면서 여기저기 들은 지식은 있지만 그애처럼 깊지는 않아요. 그래서 그애가 재테크 이야기를 하면 전 그냥 이해하는 척, 공감하는 척을 했어요. 문제는 그런 주제로 대화가 1시간이고, 2시간이고 계속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오래 만난 친구이고 딱히 싸움도 없지만,가끔은 친구가 만나자고 할 때 ‘그냥 집에서 쉬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굳이 '대화가 즐겁지 않은 친구에게 내 시간을 쏟아야 하나'라는 생각 때문에 만남을 고민하고 거절하게 되네요."
_ 재테크에는 관심 없지만 친구 관계는 고민인 30대 OO씨,
불편해지는 것이 싫어서 공감하는 척하다
아무리 친했던 사람이라고 해도 언제부턴가 대화 주제가 맞지 않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옛날만큼 서로의 일상을 많이 공유하는 것도 아니어서, 가끔 친구와의 대화가 지루하고 재미 없게 느껴진다.상대의 이야기를 못 들어주는 내가 너무 자기중심적인가 싶어 어떻게든 엉덩이를 붙이고 집중해보지만, 이해하는 척, 공감하는 척을 하다 보면 친구를 만나는 일이 전혀 즐겁지 않은 일이 되어버린다.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과의 관계라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린 시절, 중고등학교나 대학 친구들과의 관계라면 당연히 지금의 나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런 부분마저 ‘친구니까 다 받아들여야 한다’ 는 강박으로 받아들이면 문제가 생긴다.
부정적인 생각, 영양가 없는 생각을 옮겨 준다면...
친구 B는 8년 전에 동호회에서 알게 되어 지금까지 인연이 되어 온 친구다. B가 결혼을 하고 육아로 바빴기 때문에 교류가 없다가, 최근에 다시 연락을 하게 되었다. 예전에 함께 놀 때는 문화, 예술, 패션 등 통하는 것이 많았다. 그런데 요즘 B는 육아에 지쳐 힘들다는 이야기와 다른 사람의 험담을 자주 하는 것이다! 3시간 중 2시간은 남편이나 모임의 다른 엄마들을 험담하며 나도 동의해 주기를 은근히 바라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친구니까 이해해주고 공감해주고 싶었으나 대화를 할수록 계속 부정적인 말만 하는 친구에게 나도 지쳐버렸다. 하지만 나 역시 친구가 상처받고 관계도 멀어질까 봐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고 공감하는 척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새로운 우정 방식
위의 B처럼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이야기로 빠지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른 이의 험담, 염려, 걱정, 부정적인 생각 등 대화를 하고 나서 찜찜한 마음이 든다면, 적절한 차단이 필요하다. 이렇게 ‘나로 있고 싶은 마음’ 이 있지만 상대와 관계를 끊고 싶지는 않을 때, 제안하는 것이 바로 ‘건강한 거리두기’이다.
친구와의 관계도 지키고, 이해하는 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총 3단계 방법이다. 1단계 ‘대화의 주제 정해놓고 만나기’, 2단계 ‘대화 시간 줄이기’, 3단계 ‘뒤의 일정을 미리 계획하기’이다.
1단계 대화의 주제를 정해놓고 만나기:
친구와 안부를 나누다가 오랜만에 얼굴을 보자는 식으로 계획 없이 약속을 잡게 된다면 이렇게 해보자.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축구와 야구가 공통분모인 친구를 만난다면, 2~3주 동안 경기나 스포츠 관련 소식을 보고 난 후로 약속을 잡는 것이다. “지난 주에 손흥민이 골 넣는 거 봤냐?” 라는 식으로 화두를 던지면 자연스럽게 내가 원하는 주제로 대화를 이끌어갈 수 있다. 둘 다 옷이나 예술 관련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이야기할 것들을 모은 뒤 “이제 가을인데 요즘 새로 나온 신상 옷들 봤어?” 라고 시작할 수 있다. 원하는 주제를 준비하면 훨씬 더 만족스러운 대화로 이어질 수 있다.
2단계 대화 시간 줄이기:
말 그대로 대화하는 물리적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오랜만에 만나면 보통 밥을 먹고 카페에서 수다를 떠는 경우가 많다. 오랜만이다 보니 짧게 이야기하고 일어나는 것이 왠지 미안한데, 사실 두세 시간을 마주 앉아 이야기만 하는 건 꽤 긴 시간이다. 그러니 대화하는 시간, 만나는 시간을 자체를 줄여보자. 줄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밥만 먹거나, 카페에 가서 차만 마시는 것. 즉 일정을 하나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식사 시간을 피해서 약속을 잡으면 카페에 가서 바로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된다. 일정은 하나지만 이야기를 충분히 했다는 느낌이 들면 상대방도 만족스러운 느낌을 가질 수 있다.
3단계 뒤의 일정을 계획하기:
하나의 일정만 함께 하더라도 보통 2시간 이상이 넘어가면 슬슬 영양가가 없는 말, 본인들이 하고 싶은 또 다른 주제로 넘어가게 된다. 그래서 처음부터 내가 친구와 만나고 싶은 시간을 설정해둔다. 예를 들어 약속을 잡을 때 “미안한데 그날은 2시부터 4시까지만 시간이 될 거 같애” 혹은 “5시쯤엔 일어나야 해” 라고 마감을 정해놓고 대신 친구에게 아쉬운 뉘앙스를 풍겨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오히려 그 시간을 알차게 이야기하고 헤어질 수 있다. 짧게 잠깐만 봐도 즐거운 대화였다는 인식이 심어지면 상대에게도 기분 좋은 만남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