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저는 혼란스러워요. 저는 내향적이고 소심한 편인데,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말을 많이 하고 올 때가 있어요. 최근에 남자친구가 바빠지면서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이 늘었는데 그중에는 텐션이 높은 친구들이 있어요. 그 친구들이 가끔 저한테 “왜? 넌 재미없어?”라고 물어볼 때가 있는데, 그럼 저도 인식하는 거죠. ‘내가 너무 조용히 있었나?’... 그런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 엄청 소리도 높이고 움직임도 커져요. 문제는, 그런 모습으로 놀다가 집에 오면 기가 빨리고 현타가 온다는 거예요. 평소에 저는 그런 모습이 아니거든요. 친구들이 너무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나답지 않은 모습 때문에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유병재처럼 낯가림이 심한 사람이 어떻게 방송일을 할 수 있을까? 방송인이면서 작가인 유병재는 재치 있는 입담과 특유의 센스, 아이디어를 가진 인물이다. 유병재가 2018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수 홍진영과 있을 때와 개그맨 김수용을 만났을 때의 온도가 다른 모습을 보여 웃음을 유발했다. 홍진영과 있을 때는 그녀의 적극적인 모습에 당황하고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는데 김수용과 있을 때는 아주 편안한 모습이었다. 이유에 대해 묻자, '억지로 대화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랑 있으니까 편하다'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낯가림이 심한 성격인 그가 어떻게 여러 사람을 상대하는 방송일을 할 수 있을까?
대부분 사람들은 어느 정도 일관적인 자신의 모습을 갖고 싶어 한다. 일을 할 때, 부모님하고 있을 때, 친구와 연인과 있을 때 등 상황은 다르더라도 항상 비슷한 모습을 가지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위선적, 가식적 태도라고 생각한다. 특히 MBTI와 같이 개인을 하나의 유형으로 정의하는 성격유형검사가 유행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특정 유형으로 제한하고 그것만이 본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신의학과 심리학에서는 다양하고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진 개인이 훨씬 더 건강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을 사회심리학에서는 ‘자기복잡성이 높다'라고 표현한다.
자기복잡성이란 자아를 복합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자신을 ‘낯가리고 내성적인’ 사람으로만 본다면 자기복잡성이 낮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상황과 상대방에 따라서는 ‘낯가림이 있는 나’도 있지만 ‘리드를 잘 하는 나’도 있다. 이것이 둘 다 내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모순적인 모습이라 하더라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여러 가지 방향으로 다양하게 말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자기복잡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자기복잡성이 낮은 사람은 자신의 다양한 모습을 인정하지 않거나 '난 원래 이래' 하고 자신이 추구하고 싶은 한 가지 모습으로만 일관적으로 살고 싶어 한다. 반면자기복잡성이 높은 사람은 ‘나한테는 다양한 모습이 있구나’라고 받아들이고 다양한 모습을 활용하게 된다.
유병재도 자기복잡성이 높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방송일을 할 때는 분위기를 이끌고 재치있는 입담을 통해 사람들을 웃겨준다. 또 중간 다리 역할을 하며 소통을 원활하게 만들어준다. 자신이 좋아하는 방송일을 하려면 이런 상황에서는 적극적이고 말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을 몸소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가면을 쓴’ 모습이 아니라 ‘일을 하는’ 나의 모습이라고 받아들였다. 덕분에 두 가지가 충돌하지 않고 오랫동안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복잡성이 낮으면
오히려 사회생활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자기 복잡성이 높으면 사고방식이 유연하고, 따라서 다양한 인간관계에 잘 대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약속시간에 잘 늦는 사람이라고 가정해보자. 사회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기 시작했고, 새로 사귄 친구와 주말에 홍대에서 만나기로 했다. 첫 번째 만났을 때, 나는 원래의 내 느긋한 성격대로 약속 시간에 5분 정도 늦게 되었다. 그런데 늦은 것에 대해 친구가 불편한 내색을 비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후부터는 그 친구와 약속에 늦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10분 전에 도착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일까? 자기복잡성이 낮은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겪는다면 “아 이 친구랑 만나려면 약속 시간을 매번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불편해... 난 원래 약속을 잘 못 지킨단 말이야.”라고 생각할 것이다.
반면에 자기 복잡성이 높은 사람들은 ‘느긋하게 나가는 나’의 모습도 받아들이지만 약속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시간을 잘 지키려고 노력하는 나’의 모습도 나로 받아들인다. 자신의 행동을 유연한 대처라고 생각하며 억지로 쓰기 싫은 가면을 쓴 것처럼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그러니 당신이 지금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 당신은 유연한 대처를 위해 노력하는 성숙한 태도를 가진 것이다. '사람은 일관적이고 늘 같은 모습이 좋은 거 아닐까?’라는 편견을 벗고 자신의 노력하는 모습을 칭찬해주자. 그것 또한 당신이 가진 좋은 성격 중 하나라고 생각하자.
세탁소 주인할머니의 편지
"너는 다이아몬드 같은 사람이란다."
혹시 다이아몬드를 본 적이 있니? 다이아몬드는 각도에 따라서 입사각과 반사각, 그리고 모양이 다르단다. 하지만 그것을 모두 하나로 합쳤을 때 결국 ‘다이아몬드’이지. 사람의 모습도 그렇다. 네 안의 여러 가지 모습이 나타날수록, 너는 자신과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게 아니라 오히려 인생을 살면서 필요한 유연한 태도를 가지게 된 거야.
여러 가지 모습을 합치면 결국엔 하나의 다이아몬드이듯이
너도 여러 가지 모습을 합쳐 아름다운 다이아몬드가 되는 거란다.
그러니 계속해서 더 좋은 모습을 다양하게 발전시켜보렴.
📌 이젠 마스크가 아니라 '부캐'를 써볼까?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영화 <마스크>는 1994년에 나온 짐캐리 주연의 작품이다. 주인공이 '로키'(<어벤져스>에 나오는 그 로키)라는 신의 유물을 얻게 되고, 그 마스크를 쓰면 초인적인 힘과 자신감을 얻어 평소 성격과 다른 여러 가지 모습을 보인다는 스토리의 영화다. 이렇게 한 사람에게 여러 가지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을 심리학 용어로
는 '페르소나'라고 한다. 문화평론가 정덕현은 페르소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과거에는 숨기는 게 미덕이었다면 이제는 나의 정체성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임을 보여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부캐’나 ‘멀티 페르소나’ 등 여러 가지 얼굴을 하거나 가면을 쓰고 싶은 욕망을 보여주는 식으로 점점 진화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