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친구든 연인이든 여전히 어떤 사람이 나랑 잘 맞는지 잘 모르겠어요. 잘 맞다고 생각해서 연애를 시작하면 어김없이 다른 부분이 보여서 헤어지다 보니까 ‘아 그 사람은 나랑 잘 안 맞나 봐.’ 하고 생각하게 됐거든요. 근데 문제는 다 잘 맞는 사람이 나타나지도 않을뿐더러 그럼 나랑 똑같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건가? 싶거든요. 친구 관계에도 마찬가지에요.
확실히 나랑 다른 성향의 친구인데 의외로 생각은 비슷한 친구가 있어요. 비슷하면서 편하지만 딱히 대화가 남지 않는 친구도 있고요. 학교 다닐 때 물리 선생님은 사람한테는 각자 자기만의 주파수가 있어서 그 주파수가 맞는 사람끼리 연인이 된다고도 했어요. ‘맞는’ 사람이라는 건 뭘까요?
소울메이트라는 환상과 욕심
요즘은 ‘온도가 비슷한 사람’이라는 표현이 있지만 10여 년 전에는 ‘소울메이트’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소울메이트란 말 그대로 ‘영혼의 단짝’ 즉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말한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취미나 취향이 같은 사람을 원한다. 우리는 “세상에 나랑 똑같은 사람이 어디 있어?” 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한 쪽에서는 나와 같은 사람을 찾는 안테나가 켜져 있다.
앞서 예를 들었던 유병재처럼, 기본적으로 온도가 낮은 사람이라도 온도가 높은 사람들과 있으면 어느정도 동화된다. 장난치고, 소리 지르고, 평소 본인답지 않은 드립도 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갈 때 혼자 부끄러워한다. “나 오늘 너무 오바한 거 아닌가?” 이런 고민을 하는 건 '소울메이트', '온도가 비슷한 사람'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서 자신이 왜 그렇게 다른 모습을 보이는지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온도가 비슷한 사람과 있으면 편안하다. 하지만 취향이 비슷한 사람과 있으면 즐겁다. 사람들은 편안함과 즐거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자신의 온도 범주를 이탈하기도 한다.
온도와 취향 사이
온도가 비슷한 사람과 있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하다. 억지로 내 온도를 끌어 올리거나 낮추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론상으로는 온도가 비슷한 사람하고만 지내면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런데 왜 유병재는 비슷한 사람하고만 지내지 않을까? 그건 온도와 취향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이 친구를 왜 좋아하는지, 왜 이 사람과 관계를 맺는지 아주 정확하게 짚어내고 분석하지 못한다. 자기를 들여다보는 연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찾고 싶어 한다. 성격이 비슷한 사람, 자라온 환경이 비슷한 사람, 취향이 비슷한 사람 등.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그 사람이 점점 나와 더 많이 비슷해지고 가까워지기를 바란다. 온도도 취향도 비슷하기를 바란다. 그런 욕심 탓에 많은 일상의 패턴을 함께 공유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곧 알게 된다. 나와 비슷한 것 같아도 조금씩 다른 점들이 있다는 것을.
우선 취향이 같지만 온도가 다른 경우를 보자. 예를 들어 H라는 친구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말이 잘 통하는 친구다. 전시, 문화, 예술에 대한 취향이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친구는 온도가 나보다 2배는 높아서 2~3시간만 같이 놀다가 보면 “말 좀 그만해” 하고 싶어진다. 텐션이 너무 높아 금방 지칠 정도이다. 하지만 H는 계속 좋은 친구인데, 왜냐면 온도가 다를 뿐이지 그 사람과 하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즐겁기 때문이다.
반면에 온도가 비슷한 친구도 있다. 최근에 알게 된 S는 나와 온도가 비슷해서 조용조용하게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가끔 대화하다 보면 나와 가치관이라던가 삶의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많은 부분에서 공감대 형성이 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그 친구가 싫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친구가 좋아서 단둘이 만날 때도 종종 있다. 온도가 비슷해서 말이다.
온도가 달라도 나는 그 친구가 좋아
비틀즈의 존 레넌이 오노 요코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나와 예술적 온도가 맞는 사람은 없었다. 난 늘 예술가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꿈꿔왔다. 나와 예술적 상승을 공유할 수 있는 여자 말이다. 요코가 바로 그런 여자였다’. 존 레넌은 취향과 함께 온도도 같은 사람을 만났다.
아마 모두의 희망 사항일 것이다. 온도도 취향도 비슷한 사람을 만나 사랑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친구 관계까지 온도와 취향을 동시에 갖춘 사람들하고만 지내겠다는 욕심은 버리는 것이 좋다.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고, 그렇게 선을 그어 두면 대인 관계가 좁아지기 때문이다.
때로는 상대에 맞춰 내 온도를 조절하는 것도 필요하다. 친구마저 취향과 온도도 맞는 사람을 찾기보다는 나 자신을 잘 들여다보면서 인간관계를 맺어보자. 이론상으로 가장 이상적인 것은 H와 S를 반반 섞은 것일 것이다. 하지만 취향도 온도도 맞는 사람을 만나는 욕심은 일단 버리고 둘 중 하나라도 내가 편안함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을 찾자. 물론 취향도 온도도 다른 관계라면 적당히 거리를 두어야겠지만 그런 사람과는 처음부터 가까워질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그 사람을 왜 좋아하는지, 어떤 부분을 좋아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만나자. “어느 것이 진짜 내 온도지?”, “어떤 취향의 사람을 만나야 되지?” 라는 고민보다는 어느 쪽이든 그 사람과 즐거운 부분을 선택하면 된다. 상대에게 내 온도를 맞추는 일도 가끔은 다른 스타일의 옷을 입는 것처럼 긍정적인 경험이 될 수 있다.